한·일 고대사 전쟁속 연오랑·세오녀 계통의 전승이 갖는 가치 앞서 살펴본 바, 『일본서기』 중에 실린 천일창·적옥녀 관련 기록과 매우 흡사한 기록으로 의부(意富)가야(임나(任那)가야) 왕자 아라사등(阿羅斯等, 쓰누가아라시토(都怒我阿羅斯等), 소나기시치(蘇那曷叱知), 우시기아리시치긴기(于斯岐阿利叱智干岐))·백석녀(白石女) 전승도 있다. 천일창·적옥녀 전승의
앞서 천일창·적옥녀 전승을 살펴 보았는데 천일창의 주된 활동지였던 기나이(畿內) 일대, 또 호쿠리쿠(北陸道) 및 산인(山陰道) 일대에는 천일창왕자 관련 수많은 전승이 남아 있다. 이는 과거 천일창이 일본사회에 미친 영향력 정도를 알게 한다.『일본서기』 이하 일본의 여러 문헌기록에 나타난 바, 천일창이 한반도에서 가져온 선진 문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를
《삼국유사》 연오랑ㆍ세오녀와 비슷한 이야기가 동해 바다를 건너 일본 역사 기록에도 등장하니, 그 주인공이 바로 신라왕자 천일창(天日槍, 아메노히보코)과 그 아내 ‘赤玉女(아카루히메, 阿加流比賣, 赤留比賣)’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비롯하여 일본의 향토 기록인 《번마국풍토기(播磨國風土記)》, 《비전국풍토기(肥前國風土記)》,
앞서 스사노오가 무사·제철세력을 이끈 지도자이기도 했지만, 사상·종교적으로는 한국 선도문화 일반의 지도자상, 곧 군왕인 동시에 최고의 선인(仙人)을 의미하는 ‘스승왕(師王)’의 역할을 표방하였고 실제로도 이러한 이름에 걸맞게 공익적 실천의 삶을 지향하였음을 살펴 보았다. 이제 이러한 스사노오가 이즈모 일대에 뿌린 선도 제천문화을 살펴보자. 고진다니나 가무이
앞서 기·기 신화를 통해 일본 야요이문명 최초의 개척 세력이 스사노오 세력이었을 것으로 바라보았다. 이에는 이즈모 일대에서 출토되는 유적·유물의 성격과 편년 문제에 대한 고찰이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즈모 일대의 야요이 유적으로는 동검·동탁 등 청동제기가 쏟아져 나온 고진다니(荒神谷) 유적과 가모이와쿠라(加茂岩倉) 유적, 니시다니(西谷) 고분군이 유
일본의 양대 고대사서인 『고사기(古事記)』(712년)와 『일본서기(日本書紀)』(720년)의 첫머리에는 고대 일본인들의 세계관 및 일본사의 시작이 신화의 형태로 나타나 있다. 이를 ‘기(記)·기(紀) 신화’라고 한다. 기기신화는 우주가 창조되는 과정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를 잘 분석해보면 한국 고대사상의 원류인 삼원오행론적 세계관, 또 삼원오행론의
『삼국유사』·『필원잡기』·『삼국사절요』등에서는 신라 아달라왕대인 157년(아달라 4) 당시 신라문화권이던 포항 일대 바닷가에 살고 있던 연오랑·세오녀 부부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을 전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해조를 따던 연오랑이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는 바람에 일본으로 건너가자 왜인들이 그를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연오랑의 부인 세오녀는 남편을 찾
『삼국유사』에는 신라초인 157년(아달라 4) 당시 신라문화권이었던 포항 일대에서 펼쳐졌던 흥미로운 연오랑·세오녀 전승을 기록하였다. 지금까지도 포항 일대에는 연오랑·세오녀와 관련한 많은 설화, 유적, 지명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연오랑·세오녀 전승은 비단 포항 시민들에게 의미가 있는 향토문화 유산일 뿐 아니라 한국 고대의 일월광명사상, 제천의례와 긴밀
1970년대말 1980년대초 이후 등장한 선도수련단체들은 대체로 국내에서 기반을 확보한 후 해외로 진출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단학은 규모나 운영 면에서 이러한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단학(국외용 호칭은 ‘단요가Dahn Yoga’)의 해외 진출은 1991년 미국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비롯되었는데, 1993년 일지선사가 직접 미국 개척에 나서면서부터 본격화되었으며
앞서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 단학이 선도수련문화의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일차적인 요인으로 선도 전통을 현대화하였던 점을 들었다. 한국선도 전통에서 바라볼 때 단학이 주목되는 이유는 물론 현대에 등장한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 중에서 가장 크게 세를 확장하여 한국선도를 대표하는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선도 전